“불가능하기 때문에 안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안 했기 때문에 안 된 거라고 생각해요.”
조경수 시장에 왜 데이터가 없느냐고 물었을 때, 영은 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조경설계 회사에서 공간을 디자인하던 사람이, 지금은 나무의 가격과 거래 정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조경을 좋아해서 이 산업에 들어왔고, 아무도 정리하지 않았던 데이터의 첫 토대를 직접 쌓고 있습니다.
결국 이 데이터가 만들어가는 건, 좋은 나무가 좋은 공간에 제값을 받고 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조경수 유통 플랫폼 루트릭스에서 데이터 운영을 맡고 있는 신영은 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신영은 | 사업개발 / 데이터운영
원예생명조경학과를 전공하고 조경설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2023년 루트릭스에 합류해 현재 수목 가격 데이터와 고객 관리 체계를 설계·운영하고 있다.
설계하던 사람이 데이터를 쌓게 된 이유
Q. 조경설계를 하시다가 어떻게 데이터 운영까지 오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루트릭스가 진행하던 정원 시공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역할이었어요. 대학 동기의 소개로 합류했는데, 루트릭스의 안정록 대표님이 말씀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라는 비전이 제가 조경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습니다.
이후 회사가 수목 유통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저도 직접 농장에 가격을 물어보고 고객에게 나무를 판매하는 일을 해봤어요. 그 과정에서 보인 게 있었습니다. 루트릭스가 이미 많은 정보를 다루고 있는데, 그걸 기록하고 정리하는 체계가 없었어요. 농장에 가격을 물어봐도 그게 비싼 건지 싼 건지 비교할 기준 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직접 데이터를 정리하는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단위로 거래 정보를 기록하고, 수목 가격과 고객 정보를 연결하는 체계를 잡아나갔어요.
Q. 조경설계 경험이 지금 하시는 일에는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현장 소장님이 "포인트 나무를 추천해 달라"고 하시면, 저는 먼저 그 공간의 느낌을 여쭤봐요. 화려하게 보여야 하는 공간인지, 넓은 곳에 한 그루가 서야 하는 상황인지에 따라 어울리는 나무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설계를 해본 경험이 그런 맥락을 읽는 감각으로 이어져서, 단순히 "이 나무 있습니다"가 아니라 "이 공간에는 이 나무가 맞을 것 같습니다"라는 제안을 할 수 있어요.
나무 가격은 하나가 아닙니다
Q. 외부에서 잘 모르는 이 시장의 특성이 있다면요?
수목 가격의 구조입니다. 보통 나무 가격이 하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목대가’는 나무 자체의 가격이고, ‘작상가’는 나무를 캐내고 차에 싣는 작업 비용이 포함된 가격, ‘도착가’는 거기에 운반비까지 더한 가격입니다. 그런데 이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공식이 아직 시장에 없어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조금만 사면 더 싸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반대예요. 나무를 캐내는 작업은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적게 살수록 나무값보다 작업비 비중이 오히려 더 커집니다. 결국 수목 시장은 나무값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작업과 운반이 함께 묶여서 움직이는 시장이에요.
Q. 그런 가격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계신 건가요?
같은 수종, 같은 규격의 나무라도 농장마다 가격이 달라요. 그래서 하나의 수종과 규격 조합을 기준으로, 여러 농장의 가격을 모아서 비교합니다. A, B, C, D 농장의 가격을 놓고 보면 그 나무의 시장 가격대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여기서 데이터가 있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가격이 높은 농장은 서울과 가까워서 운반비가 적게 드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가격이 낮은 농장은 지방의 1차 생산자인 경우가 많고요. 그러면 대량 주문에는 지방 농장이, 소량 주문에는 가까운 농장이 더 합리적일 수 있어요. 데이터가 쌓이기 전에는 가격이 갑자기 높게 나와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데이터의 첫 토대를 만드는 일
Q. 이 산업에서 데이터를 쌓는 게 왜 어려운 건가요?
참고할 기준이나 사례가 없는 상태에서 뭘 기록하고 어떻게 분류할지를 직접 설계해야 했어요. 그게 가장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견적 자동화를 설계하려면 수종과 규격뿐 아니라 작업비도 계산에 넣어야 하는데, 규격이 커진다고 작업비가 똑같이 비례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활엽수 중에서도 옆으로 넓게 자라는 나무는 차에 실을 수 있는 양이 달라져서 운반비도 달라지고요. 이런 걸 뭘 기준으로 나눠야 하는지, 그 판단 자체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도 사실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팀원들이 쉽게 입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에요. 농장을 오가며 이동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입력이 복잡하면 데이터가 안 남거든요. 그래서 사내 메신저에서 답변하면 자동으로 관리 시스템에 연동되게 만들고, 한 번 입력한 정보는 다시 입력하지 않아도 되게끔 구조를 짜고 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데이터가 빠르게 루트릭스 내부에 쌓이고 있어요.
좋은 나무가 적정한 가격에 거래될 수 있는 구조
Q. 앞으로 이 데이터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설계사분들이 저희한테 가격 문의를 정말 많이 주세요. 설계사는 직접 나무를 구매하는 분들은 아니에요. 하지만 공사 예산을 짜려면 정확한 수목 가격이 필요하거든요. 저희한테 당장 수익이 되는 일은 아닌데, 이 산업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게 루트릭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습니다. 설계사가 정확한 가격을 알아야 적정한 설계가 나오고, 그래야 시공도 제대로 되니까요.
지금 쌓고 있는 데이터가 더 촘촘해지면 견적 자동화도 가능해질 거예요. 그러면 가늠하기 어려웠던 작업비와 운반비까지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되겠죠. 생산자분들 중에 아직 수기로 장부를 관리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런 구조가 농장 쪽에도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큰 그림은 이런 거예요. 농장에서 좋은 나무가 적정한 가격에 거래되고, 구매자는 그만큼 좋은 품질의 나무를 심어서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거죠.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 재료가 제대로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데이터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일은 느리고, 답이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은 님은 말합니다. "가상의 값으로 설계하고, 실제 데이터와 비교해 나가면 결국 정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었던 것들을, 루트릭스는 하나씩 쌓아가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 없는 수목 거래 플랫폼, 루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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